제로웨이스트 실천 중 생긴 실패담과 그 해결 과정
서론 – 지속 가능한 삶으로 가는 여정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가 처음 귀에 익숙해졌을 때, 필자는 마치 무언가 ‘올바른 길’을 발견한 듯한 희열을 느꼈다.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 순환에 기여하며,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상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해보니, 말처럼 쉽지 않았다. 되레 불편함과 혼란, 그리고 몇 번의 좌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글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다 겪었던 크고 작은 실패담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다시 균형을 찾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이 경험이 누군가의 지속 가능한 삶 실천에 작은 힌트가 되길 바란다.
1. 실패 사례 1 – 벌크샵 과잉 구매의 함정
제로웨이스트 실천 초기에 나는 마치 ‘환경 영웅’이 된 양 유리병과 천 가방을 들고 벌크샵을 방문했다. 포장재 없는 곡물, 견과류, 세제 등을 채우며 자부심을 느꼈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특히 통밀가루와 병아리콩은 유통기한을 넘겨 절반 가까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포장 쓰레기는 줄였지만, 결국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나름 ‘착한 소비’를 했다고 믿었지만, 결국 ‘과잉 소비’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해결 방법
그 뒤로는 ‘기록’을 시작했다. 벌크샵을 방문하기 전 냉장고와 찬장을 확인했고, 구매 목록을 미리 메모했다. 그리고 “1회 사용량 × 2주 분량만 구매”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후 과잉 구매로 인한 음식물 낭비는 눈에 띄게 줄었다.
2. 실패 사례 2 – DIY 제품 만들기의 불편한 진실
제로웨이스트의 일환으로 나는 샴푸 바, 천연 치약, 세제 등을 직접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주말 내내 재료를 혼합하고, 굳히고, 나누는 데 시간을 쏟았지만 퀄리티는 시중 제품에 못 미쳤다. 특히 손세정제는 냄새가 심했고, 세탁 세제는 냄새는 없지만 세척력이 부족했다. 나중엔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해결 방법
모든 걸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내가 직접 만들기 힘든 제품은 리필 가능한 용기를 사용하는 브랜드 제품을 선택했다.
특히 로컬 브랜드 중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실천하면서도 기능이 뛰어난 제품들이 많았다. 나는 점점 ‘100% DIY’ 대신 ‘현실 가능한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게 되었다.
3. 실패 사례 3 –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시작한 초반, 나는 꽤나 ‘과격한 활동가’였다.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친구에게 “그렇게 살면 지구가 죽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냉랭했다. 친구는 서서히 나를 피했고,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관계와 감정까지 고려하지 못한 실천은 내 삶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었다.
해결 방법
이후 나는 ‘강요하지 않되, 묻는 사람에겐 친절히 설명하는 자세’를 취했다. 친구 생일 선물로 리유저블 컵을 선물하면서 “이 브랜드가 요즘 핫하더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소개했고,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서 플라스틱 대신 내 텀블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 지금은 몇몇 친구들도 스스로 실천을 시작했다.
4. 실패 사례 4 –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
제로웨이스트에 입문한 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일회용 젓가락을 안 가져온 날이면 하루 종일 죄책감에 시달렸고, 누군가가 나를 보며 “제로웨이스트 한다더니 저런 것도 쓰네?”라고 말할까 봐 늘 긴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지속 가능한 삶이라기보단 지속 불가능한 압박감이었다. 내 삶에 ‘기쁨’보다 ‘처벌’이 더 커졌고, 결국 번아웃이 왔다.
해결 방법
나는 스스로에게 “제로웨이스트는 방향이지, 도착지가 아니다”라고 되뇌었다.
가끔 실수해도 괜찮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도 그건 ‘진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SNS에서도 ‘실수한 날’을 공유하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놀랍게도 그 글에 더 많은 공감과 응원이 달렸다.
5. 실패 사례 5 – 정보의 과잉과 혼란
제로웨이스트 관련 콘텐츠를 너무 많이 소비하면서, 오히려 무엇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는 천 기저귀가 최고라고 했고, 블로그에서는 워셔블 생리대가 좋다고 했으며, 책에서는 무조건 비건 소재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실천보다 정보 수집에만 시간을 쓰게 되었고,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기력해졌다.
해결 방법
이때부터 나는 ‘나의 환경’에 맞는 방식만 선택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참고하되, 무조건 따르지 않기.
예를 들어, 출퇴근이 긴 나에겐 고체 샴푸바보다 리필 가능한 액상 샴푸가 더 맞았다. 그리고 환경 정보는 한두 개의 신뢰할 수 있는 채널로만 한정했다.
지속 가능하려면, 정보도 선택적으로 걸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결론 – 실패는 실천의 일부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성공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천 과정에서 나오는 시행착오를 통해 나만의 방식과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쓰레기 없는 삶’을 살 순 없지만, 매일 조금씩 줄이는 삶을 살 수는 있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고, 나의 리듬에 맞는 실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다.
이 여정 속에서 나는 내가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실패는 그 변화의 중요한 일부였다.
제로웨이스트는 결국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삶의 철학’이다. 그 철학이 나를 더욱 유연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만들어줬다.